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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 이용하고 사면 받고… 입찰제한 기업들, 담합 제재 무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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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 이용하고 사면 받고… 입찰제한 기업들, 담합 제재 무력화

입력
2015.12.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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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남발

법원은 10건 중 9건 손들어 주지만

본안 재판에선 승소율 14% 불과

담합 업체는 확정판결 때까지

2, 3년간 제재 없이 관급공사 참여

정부도 잇단 사면권 행사로 ‘면죄부’

/

입찰 담합 등 관급 공사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업체에 대한 제재인 ‘입찰참가자격 제한’이 업체의 가처분 신청 남발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법원이 입찰참가자격 제한 가처분 신청과 본안 판결에서 각각 엇갈린 결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 제재 무력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 조달청이 국회입법조사처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업체들이 조달청을 상대로 낸 입찰참가자격 제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은 총 255건에 달한다. 이중 법원은 89.4%인 228건에서 업체 측 손을 들어주는 ‘인용 결정’을 내렸지만,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경우(신청 기각)는 27건(10.6%)에 불과했다. 10건 중 9건에서 기업 손을 들어준 것이다. 입찰참가자격 제한은 조달청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 국가기관이 실시하는 입찰 등에서 불성실한 업체에 대해 1개월에서 2년 범위 내에서 관급공사 입찰참가자격을 전면 제한하는 제도다.

그러나 가처분 신청 이후의 본안(本案) 판결에서의 법원 판단은 이와 정 반대였다. 같은 기간 확정 판결이 난 본안 소송 178건 가운데 원고 승소(기업 승소)는 24건으로 13.5%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정부 승소(154건ㆍ86.5%)였다. 업체 측이 특별사면을 받아 소송을 취하한 건수는 집계에서 제외됐다.

법원이 빠른 시간 내 결정을 내리는 가처분 신청에선 기업 편에, 엄밀한 사실 관계 파악과 법리 검토를 거쳐야 하는 본안 소송에서는 정부 편에 섰다는 의미다.

그 결과 입찰 담합 등을 한 업체는 가처분 소송 승소 시점부터 본안 확정 판결 때까지 걸리는 2, 3년의 기간 동안 아무 제재 없이 관급 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실제 4대강 사업과 인천도시철도 2호선 사업에 입찰 담합을 했다가 적발된 도급 순위 상위 10개 건설사는 본안 소송 기간 중 조달청에서 낙찰 받은 계약 금액이 1조2,453억여원에 달했다. 이는 이들 업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부과 받은 과징금 액수(2,116억원)의 5배가 넘는 규모다.

가처분 신청의 특성 상 본안 소송보다 인용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문제는 정부의 잇단 사면권 행사와 맞물려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2012년 이명박 정부는 입찰참가자격 제한을 받은 건설사 68곳을 사면했고 올해 박근혜 정부도 광복절 특별사면에서 건설사 48곳을 사면한 바 있다. 이들 건설사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직후 가처분 신청을 내 효력을 정지시킨 상태에서 사면을 받아 불법 행위에 따른 불이익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이와 관련, 조달청 관계자는 “가처분 소송과 본안 소송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내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체계를 뒤흔드는 것은 곤란하다’는 반대 입장이 정부 내에서 나오고 있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반면 건설업계에서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자체가 너무 과하다는 반론을 꾸준히 제기한다. 업계 관계자는 “담합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 받고 발주처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당하는데, 입찰참가 자격까지 하는 것은 이중 처벌의 소지가 있다”면서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되면 관련 인력이 유휴인력이 되는 것은 물론 외국 정부가 발주한 입찰 참가 시에도 불이익을 받아 피해가 막심하다“고 말했다.

입법조사처는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면서도 현행 방식에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현재 입찰참가자격 제한 사유로 하도급법 위반이나 안전ㆍ보건조치 소홀이 있는데 이는 ‘공공계약의 공정하고 투명한 집행’이라는 목적과는 관련이 없어 제외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3회 이상 입찰 불참가’ ‘실시 설계서 미제출’ 등의 사유도 위반 정도가 경미해 입찰참가자격 제한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세종=이성택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19일 담합으로 적발됐다가 사면된 건설업체 CEO들이 자정 실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일 담합으로 적발됐다가 사면된 건설업체 CEO들이 자정 실천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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